훈요십조와 삼성의 이건희 아들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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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요십조와 삼성의 이건희 아들 이재용
닉네임 초록하늘 등록날짜 2009-02-14 01:38:42 조회수 56 추천 0

호랑이 새끼를 품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이건희씨를 보며..

그의 부친 이병철 씨는 과연 뭐라고 할지.....

세상이 다 알고 있었던..바보같은 행동을 하고는..병진도 아니고..쯧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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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FTT를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이건 뭐 그냥 찌질이라기엔 뭔가 아주 뭐 숫제 이성이 마비된 종교같은게 있어..
당췌 왜 저러는지 학문적으로 진지한 연구와 치료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 Pumashock! ♥
밴드들이 영미권 노래들을 카피해서 공연하거나
가수들이 살짝 분위기를 잡고 싶을때는 팝을 한곡쯤 불러주는게 당연한 환경에서 성장한 이에게
k-pop을 사랑하는 늘씬한 흑인 여성이 불러제끼는 SNSD - Gee (Pumashock's remix) :) 는
참으로 어색하지만... 조..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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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네임 | 2009/02/14 14:04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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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요정 at 2009/02/16 13:25
이성미가 누구야
Commented by 닉네임 at 2009/02/16 20:19
이럴때 쓰라고 비공개가 있는거라능....
Commented by 요정 at 2009/02/16 20:23
부크러? ㅋㅋㅋㅋ
Commented by 닉네임 at 2009/02/16 20:24
살짝...;;
Commented by 우아미 at 2009/02/27 11:41
태조왕건이 남긴 훈요십조에서 말하는 “차현이남 공주강 밖”에 대해서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본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훈요십조 중 제 8조]
차현 이남 공주강 밖은 산지의 형세가 아우르며 내달리는 背逆의 형세로 민심 또한 그러하니 그 곳에 속하는 주현의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이나 왕실의 인척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혹은 나라에 변란을 일으키거나, 혹은 통합 당한 원한을 품고 길을 치워 난을 일으킬 것이다. 또한 일찍이 官寺의 노비와 津, 驛의 雜尺에 속하던 무리가 혹은 권세에 붙어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 혹은 왕실이나 궁원에 붙어 언어를 간교하게 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하고 정사를 어지럽힘으로써 災變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양민이라 하더라고 마땅히 관리의 지위를 주어 일을 보게 하지 말 것이니라. (원문 : 其八曰,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參與朝廷, 與王侯國戚婚姻, 得秉國政, 則或變亂國家, 或銜統合之怨, 犯蹕生亂, 且其僧屬官寺奴婢, 津驛雜尺, 或投勢移免, 或附王侯宮院, 奸巧言語, 弄權亂政, 以致灾變者, 必有之矣, 雖其良民, 不宜使在位用事)

여기에서 “車峴以南, 公州江外”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자가 있으나 이것은 호남지역이 과거 倭(=마한,모한,임나일본)였고 백제가 이 왜의 속국이었던 역사에서 이곳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삼국사기 온조왕 24년 7월 기사]
24년 7월에 왕은 熊川柵을 축조하니 馬韓王은 사신을 백제로 파견하여 책망하기를,
"왕이 처음 왔을 때는 발들일 곳이 없으므로 내가 '동북방 100여리'의 땅을 갈라주어 편히 살게하고, 王에 대한 대우도 후하게 하였으므로 마땅히 이의 보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지금 國家를 완전히 이룩하자 우리를 적으로 대하여 城池를 크게 설비하여 우리 강토를 침범하니 그 義理가 어찌되는 것인가"
하므로 王은 부끄러워하며 곧 熊川柵을 헐어버렸다.
(원문 : 二十四年秋七月. 王作熊川柵. 馬韓王遣使責讓曰.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其待王不爲不厚. 宣思有以報之. 今以國完民聚. 謂莫與我敵. 大設城池. 侵犯我封疆. 其與義何. 王慙. 遂壤其柵 )

그런데 여기서 마한은 어디를 두고 한 말인가는 일본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서기 권 제14 雄略天皇]
20년 겨울에 고려의 왕은 크게 군병을 일으켜 백제를 격멸시켰다. 그 때 소수의 殘兵이 있어 軍資倉 아래 모여 있었다. 兵糧은 이미 떨어져서 깊이 근심하고 울고 있었다. 이에 고려의 諸將은 왕에게 言上하여.
"백제가 非常하다 함을 신은 그것을 매양 보아왔으니,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失期한다면, 다시금 일어날 것이 두렵사옵니다. 청하옵건데 이 기회에 그들을 추격하여 전멸시키시옵서서."
라고 말하였다.
이에 왕은 말하되,
"불가하다. 과인은 백제국은 일본국의 官家가 된 바 유래가 오래다고 들었다. 또한 그 왕이 일본국에 들어가 天皇을 섬기었다는 것은 四隣의 여러 나라가 다 알고 있는 바다."
고 말하였다. 그래서 추격하는 것을 중지시켰다.
21년 春 三月에 천황은 백제가 고려에 破하였다는 것을 듣고 "久麻那利"를 汶洲王에게 賜하여 문주왕을 구하고, 그 나라를 구하여 부흥시켰다. 때의 사람들은 모두
"백제국은 비록 屬黨은 이미 망하고 軍資倉 아래 모여서 근심하고 있다가 실로 천황의 힘에 의지하여 다시 그 나라를 만들었다."
하였다.(문주왕은 개로왕의 同母弟이다. <日本舊記>에 의하면, 구마나리를 末多王에게 賜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틀린 말이다. 구마나리라 하는 곳은 임나국에 속하는  呼唎縣의 한 邑이다.) (원문 : 二十年冬, 高麗王大發軍兵, 伐盡百濟, 爰有小許遺衆, 聚居倉下, 兵糧旣盡. 憂泣滋深. 於時, 高麗諸將, 言於王曰, 百濟心許非常, 臣每見之, 不覺自失, 恐更蔓生, 請逐際之, 王曰, 不可矣. 寡人聞, 百濟國者爲 日本國之官家所由來遠久矣, 又其王入仕天皇, 四隣之所共識也,逐止之. 二十一年 春三月,天皇聞百濟爲高麗所破以久麻那利賜汶洲王,救汶洲王,救興其國, 時人皆云,百濟國,雖屬旣亡,聚憂倉下,實賴於天皇,更造其國(汶洲王蓋鹵王母弟也.日本舊記云,以久麻那利 賜末多王,蓋是誤也,久麻那利者,任那國下 呼里縣之別邑也.)

즉,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마한왕이 곧 일본천황이다 라는 것이다.
또한, 마한왕이 내준 금강 이북의 백여리 땅이 곧 “구마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공주를 그곳에서는 "구마나리"라고 한다.
그런데 차령산맥-소백산맥-금강을 이어보면 마치 망나니 칼(=무당칼=驅魔劍)과 같은 모양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이른바 "久麻那利"인 것이다.
즉, “공주강 밖”이라고 한 것은 금강이 북쪽으로 호(弧)를 그리면서 흐르기 때문에 금강의 이북을 말하는 것이다.
앞서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를 통해서도 보았지만 이곳은 대륙의 백제가 망하면 일본천황이 백제왕에게 이 땅을 주어서 백제를 살려 내는 곳이다. 이곳에 백제의 핵심 유민이 살아 온 것이다.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곳 또한 이 지역에 속하는 천안에서였고 지금도 천안에는 후백제 성터가 있다.

倭는 기원전 700년경에 환국(桓國=辰)을 계승하여 나주를 도읍으로 건국되었고 그 영토는 산동반도 발해만의 요서,요동 만주,한반도 일본열도를 포함하는 대국을 이루었다.
이 왜가 산동반도에서부터 만주 시베리아 대동강 이북까지를 영토로 한 위만조선의 건국으로 대륙의 영토를 상실하였고 이 때 위만조선에 의해 축출된 기자조선의 왕에 의해서 한 때 금강 이북의 영토를 내주면서 마한이라는 국호가 생겨났다.
이것은 여러 사서에 확인된다.

『潛夫論』卷 9 志
옛적 주나라 선왕때 또한 한후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연나라 근처에 있었다. 고로 시경에 말하되 ‘넓다란 저 한성은 연나라 군사에 의해 다스려 진 바 되었다. 그 후 한후 또한 또한 성씨가 韓이었다. 위만에 의해 정벌된 바 해중으로 옮겨 살았다.(昔周宣王 亦有韓侯 其國也近燕 故詩云 普彼韓城 燕師所完 其後韓侯亦姓韓 爲衛滿所伐遷居海中)
즉 지금의 익산 부근을 도읍으로 “마한”을 건국하였다는 말이다.
마한이 건국된 기원적 200년경 한반도 남단은 여전히 倭였다는 것은 여러 사서의 기록에 나타난다.

[삼국지 오환선비 동이전]
“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고, 동쪽, 서쪽을 바다로 경계를 하고 있으며 남쪽은 왜와 접하고 둘래가 4천리이다.”(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爲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
“韓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그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며 셋째는 변한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으며 54국이다. 그 북쪽은 낙랑과 접하고 남쪽은 倭와 접한다. 진한은 동쪽에 있으며 12국이다. 그 북쪽은 예맥과 접한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고 그 남쪽은 역시 왜와 접한다.”(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辰韓在東,十有二國,其北與濊貊接。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

호남은 본래 환국, 일본, 박달, 배달 등으로 불려왔습니다. 본래 일본은 바로 호남을 말하며 또한 倭는 이 호남의 왜에 의해서 건국되었음을 사서는 적고 있습니다.

[구당서]
일본국은 倭국의 한 나라이다. 그 나라는 해(금강 이남)의 끝쪽에 있기 때문에 일본이라고 했다. 또한 왜국이 그 이름을 스스로 고상치 않다고 하여 일본이라 바꾸었다 한다. 또한 일본은 예석에 소국이었는데 왜국의 땅을 병합하였다고 한다.(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 以其國在日邊 故以日本爲名 或曰 倭國自惡其名不雅 改爲日本 或云 日本舊小國 倂倭國之地)

즉 나주를 초기 천년 도읍으로 하였던 대륙의 倭와 이의 속국인 백제와의 관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바로 훈요십조의 “차현이남 공주강 밖”입니다.
또한 백제, 신라, 가야는 倭의 속국입니다.

-양서
新羅者,其先本辰韓種也.辰韓亦曰秦韓,相去萬里,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馬韓,馬韓亦割其東界居之,以秦人,故名之曰秦韓.....相呼皆爲徒,不與馬韓同.又辰韓王 常用馬韓人作之,世相係,辰韓不得自立爲王,明其流移之人故也,.恒爲馬韓所制
신라는 본시 진한의 종족이다. 辰韓은 또한 秦韓이라고 한다. (양나라)와 만리 거리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秦나라 때 노역을 피하여 마한으로 투항해 오자 마한은 또한 그 동쪽 땅을 떼주어 그곳에 살게 해 주었다. 秦나라 사람이었으므로 그곳을 秦韓이라 하였다.....서도 모두를 부르니 무리를 이루었으나 마한과는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辰韓王을 항상 마한인으로 하여 계승하게 하였으므로 진한은 스스로 왕을 세울 수가 없었는데, 유이민인 이유에서 였다. 그래서 항상 마한의 다스림을 받았다.

-남제서 권58
建元元年, 進新除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武號爲鎭東大將軍.
건원원년 왜왕 무에게 <사지절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 모한 6국 제군사 안동대장군>을 제수했다.

-양서 권54
除武持節都督倭新羅任那伽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鎭東大將軍
양나라 황제가 왜왕 무에게 <지절도독 왜,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6국제군사진동대장군>직을 제수했다.

-북사 권94 왜국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竝仰之恒通使往來
신라 백제는 모두 왜를 큰 나라이고 진귀한 물건이 많다고 여겨 항상 우러러보며 사신을 보내 왕래한다.

-수서 권46 왜국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竝仰之恒通使往來
신라 백제는 모두 왜를 큰 나라이고 진귀한 물건이 많다고 여겨 항상 우러러보며 사신을 보내 왕래한다.

-송서 권97
弟珍立遣使貢獻. 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表求除正, 詔除安東將軍倭國王. (중략) 二十年, 倭國王濟遣使奉獻, 復以爲安東將軍倭國王. 二十八年, 加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 安東將軍如故. (중략) 興死弟武立 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중략) 順帝昇明二年, 遣使上表曰, 封國偏遠, 作藩于外, 自昔祖, 躬甲跋涉山川不遑寧處. 東征毛人五十五國, 西服衆夷六十六國, 渡平海北九十五國, (중략) 而句驪無道, 圖欲見呑掠抄邊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 雖曰進路, 或通或不臣亡考濟實忿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擧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居在諒闇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 至今欲練甲治兵, 申父兄之志, 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 若以帝德覆載, 此强敵, 克靖方難, 無替前功. 竊自假開府儀同三司, 以勸忠節.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

왜왕이 죽고 아우 진이 왕위를 이어받아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받쳐왔다. 스스로 자칭하기를 <사지절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칭하며 표를 올려 벼슬 제수해 주시기를 구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조서를 내려 안동장군 왜국왕을 제수했다. (중략) 이십년에 왜국왕 제가 사신을 보내서 공물을 바치자 다시 안동장군 왜국왕을 삼았다. 이년에는 또 <사지절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를 삼고, 안동장군의 칭호는 그대로 두었다. (중략) 흥이 죽자 아우 무가 서서 스스로 자칭하기를 <사지절도독 왜 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칠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했다. (중략) 순제 승명 이년에 왜왕 이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리기를, "나라를 궁벽하고 먼 곳에 봉해 받아서 밖의 번신이 되오니 옛날 조상 때로부터 내려오면서 몸소 병기를 들고 산과 내로 돌아다니기에 편안한 곳이 없었읍니다. 동쪽으로는 모인 55국을 정벌했고, 서쪽으로는 중이 66국을 항복받았으며, 바다를 건너 북쪽 나라 95국을 평정하여 왕의 도가 무르익어 태평하고 땅을 넓혀 서울이 까마득히 멀어졌읍니다. (중략) 구려(고구려를 의미)무도해서 우리 나라를 삼키려 하여 변방을 침략하고 약탈하여 근심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매양 일이 막히고 거슬리어 어진 풍속을 잃고 있아오니 비록 나갈 길은 있다고 하지만 그 길이 혹은 통하기도 하고 혹은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신의 아비 제가 실로 이들 침략하는 원수를 분히 여겨 중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백만의 활을 당기자 의리의 찬 소리에 감격하여 바야흐로 군사를 크게 일으키려 했았더니 갑자기 아비와 형을 잃어 일을 이루려는 공이 흙 한 삼태기에 무너지고 말았읍니다. 이로부터 신은 양암에 거처하여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싸워 이기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병기를 연마하고 군사를 훈련하여 부형들의 뜻을 펴보고자 하옵는데 의사와 용맹스러운 군사들이 문무를 가릴 것 없이 공을 나타내려 합니다"라고 했다.
Commented by 닉네임 at 2009/03/04 23:29
님하.. 3줄 요약이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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